인천항에서 4시간을 뱃길을 달려야 닿을수 있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
인천여객터미날에서 하모니플라워호가 6월21일까지는 오전 8시 20분에 출항한다
인천 섬나들이를 장려하기 위해 1박 이상 체류하는 관광객에게 배요금을 50% 할인해주는데
주말 오전에 출발하는 하모니플라워호는 대부분 매진되어 개인할인 예매는 할수가 없고
오후에 출발하는 씨호프호만 개인 예매 수량이 남아 있다
하모니 플라워호를 이용하려면 여행사 패키지를 통해서 가야하는것 같다
긴 뱃길에 지루함과 배멀미를 어찌 잘 대처할지가 관건인듯...
올해는 섬 여행을 하기로 맘 먹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볼까 한다
백령도 연꽃마을 펜션 http://www.dusdus.co.kr/
백령도는 동경 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 지점에 위치한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의 섬이다.
이섬은 면적 45.84제곱킬로, 해안선의 길이 56.8킬로, 최고높이 해발 185미터로 우리 나라 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22.2킬로 떨어져있는 이 섬은 북한의 황해도 장연과는 직선 거리 10킬로, 장산곶과는 15킬로 떨어져 있다. 백령도 서북쪽의 두무진과 북한의 장산곶 중간에는 만고 효녀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뱃사람에게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바다에 빠졌다는 인당수가 사나운 물결을 꿈틀거리고 있다.
백령도의 남쪽에는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 용궁에 갔다가 타고 온 연꽃이 조류에 밀려 왔었다는 연화리와 그 연꽃에 걸려 있었다는 연봉바위가 있다.
이섬은 동쪽과 북쪽으로는 북한의 황해도 옹진반도와 장연군을, 남쪽으로는 대청도를 마주 보고 있다. 이 섬의 북쪽에는 이섬의 최고 지점을 이루는 산이 있고, 동쪽 해안선은 작은 만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항해 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이섬은 신라 시대부터 중국과 배로 왕래할때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백령도는 제4기 빙하기 때에는 황해도 옹진반도와 연결되었던 평원상에 돌출한 잔구상의 지형으로 해수면의 상승으로 저지가 침수되어 잔구의 윗부분이 남아 육지와 분리되어 섬으로 된 지형이다. 섬전체가 ㄷ자형으로 섬의 동쪽이 만입지형의 갯벌중간대를 이루어 바다와 접하고 있다.
이 만입지형의 넓은 뻘이 최근에 간척되어 농지와 저수지로 변하고 있다. 해안선은 동부의 만입지형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단조로운 해안선을 이루고 암석해안과 사반해안이 교체되어 발달하였다. 섬의 동북족에 위치한 용기포와 용기원산은 원래 섬이었으나 연안사주의 발달로 백령도와 연결된 전형적인 육계도이다.
용기포에서 남서방향으로 3km 정도 발달된 사곶해수욕장은 세립질의 규사로 이루어져 물이 잘빠지고 단단하여 천연 비행장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최근 진촌리 앞 갯벌을 간척하기 위하여 방조제를 쌓은 후 실트(모래와 점토의 중간입자)질의 입자가 유입되기 시작하여 특성이 변하고 있다. 진촌리앞 만입지형내에 위치한 갯벌은 백령도에서 보기드문 뻘지대이나 1991년 부터 농지조성과 수자원 확보를 위하여 간척지개발사업이 시작되어 1991년 완공되었다
옛날 황해도 어느 마을에 열심히 글공부를 하며 지내는 선비가 있었다. 매우 가난하게 사는 선비의 집가까이 사또의 거처가 있었다. 사또는 딸하나를 두었는데 그 선비가 사또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사랑했다.
그래서 선비는 밤이면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 사또의 딸과 깊은 정을 나누곤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사또가 가난한 선비를 미워하여 그 고을에서 ?아내면서 배를 타고 멀리 떠나라고 했다. 그 선비는 헤어지는 마당에 사또의 딸과 만나서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때가 있을 것이다. 꼭 만날 날이올것이다. 그 때를 기다리자 그런날이 머지않아 올것이니 참고 기다리자."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배를 타고 멀리 떠났다.
그 선비는 어느 섬에 도착하여 역시 글공부를 계속하면서 사또의 딸을 그리워하고 만나게 될날을 기다리며 지냈다. 하루는 하얀 학이 울안에 종이 한 장을 떨어뜨렸다.
얼른 그 종이를 주워 읽어보니 그 아가씨의 사랑의 고백을 담은 연서었다. 그래서 다른 종이에 "여기가 어느 지점이다"라고 적어서 그 학에게 주었다. 그학은 길이 잘든 학이었던지 다지 그것을 물고 사또가 사는 집으로 가서 그 딸에게 전해 주었다.
학이 전해준 쪽지를 받은 사또의 딸은 그 선비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 잘살았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그 섬을 "흰 백자, 날령 자를 써서 백령도라 불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심청전과 내용은 흡사하다.
그러나 심청이가 연꽃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고 심청을 바다에 빠뜨릴 때 국상인들은 배에 있던 비단으로 심청의 온몸을 꽁꽁싸서 빠뜨렸고 심청이는 비단덕분에 바다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류에 의해 황해도
덕돔포라는 포구에 떠밀려가서 임금이 아니라 그마을 원님에게 불려가 원님의 아들과 혼인을 하고 맹인잔치도 임금이 아니라 그마을 원님이 열어 아버지를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두무진
두무진 선대암은 백령도 북서단 해안에 약 400m 거리에 걸쳐 기암절벽이 발달하여 있는 지대를 지칭한다. 두무진 일대의 지질은 원생대의 상원계에 속하는 세립질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암은 대체로 백색 또는 담회색을 띠고 있다.
규암들은 해식작용에 의하여 해안에 따라 약 30~40m 높이의 절벽 또는 바위기둥을 이루고 있고 해식동굴도 보인다. 해변에는 자갈들이 널려 있는데 일부 규암은 풍화작용에 의하여 그 표면이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선대암 일대는 자연경관이 훌륭할뿐아니라 남한에는 분포되지 않은 원생대 상원계에 속하는 규암으로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크다.
선대암에서 해안선을 딸 남쪽으로 4Km 지점에 이르는 사이에 발달된 해식대. 스택,해식동,바다아치 등은 절경을 이루며 해식대와 스택의 높이는 40m에 달하는 곳도 있어 장관이다.
바다아치는 5개 있으며 가장 큰 것은 높이 10여m 폭5m 정도이다.
1486년에 발간된[동국여지승람]에는 두모포(頭毛浦).1802년에 씌여진 [백령진지]에는 두모(頭毛)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자의 뜻은 ‘털’의 뜻과. 풀의 뜻이 있는데 ‘선대암 바위들이 풀 같이 솟아있다’거나 ‘바위에 붙은 해초가 콩나무 뿌리 같이 많다’는 조상들의 생각이 담겨져 있으리라 추정된다. 즉, 바위에 붙은 미역,말,가시리 등이 머리털 같이 붙어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이 포구를 두문진(頭門津)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구전에 의하면 1832년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인 키츨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하였다고 하며,1816년 기독교 최초의 복음인 한문성경이 영국 해군 함선인 알세스터호와 리라호에 의해서 백령도에 전해졌고 이때 함장 시실흘(리라호 함장)이 상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두무진은 서해안 교통의 요충이였고 백령도 제일의 관문이었으므로 ‘두문진’이라 호칭했으리라고 추정할수 있다.즉 두무진은 백령도의 북서쪽 꼭대기에 있는 문호란 뜻에서 불려졌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면 두무진은 명승 8호로서 우리나라에 손꼽히는 관광지일뿐 아니라 우리나라최초의 선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상육한 성지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그후 러.일 전쟁때 이곳에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건설되었는데 지금도 콘크리트 흔적이 남아있다. 그때무터 명칭이 두무진(頭?津)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무진 뱃터에서 유람선을 타고 포구를 빠져 나가자마자 왼편으로 기괴하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마치 사열을 받은 듯 늘어서 있는데 선대암,형제바위,코끼리바위,장군바위,촛대바위 등이 그 이름들이다.
유람선을 타고 남쪽해안을 따라 돌면 수억년 동안 바람과 비,운이좋은 날은 코끼리바위를 지날 때 물범이 헤엄치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를 타지 않고 해안자갈길을 따라 선대암이 보이는 능선에 오르면 멀리 장산곶을 향하여 세워진‘통일기원비’를 만나게 된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면 선대암,형제바위등 두무진의 절경이 모아져 있는 곳을 감상하고 촬영할수 있는 뷰포인트에 이르게 된다.이곳에서 사색을 하거나 낚시를 하면 하루 해를 보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특히 선대암은 조선 광해군 때(1612)이곳으로 귀향온 이대기가 그가 지은 [백령도지]에서 ‘늙은신의 마지막작품’이라고 극찬햇을 정도로 기이한 경관을 자랑한다.
두무진 입구에는 ‘반공희생자 위령비’가 있는데 이는 조업중 북한군의 급습으로 피납외어 가다가 그들에게 반항하여 희생된 두무진 어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802년에 간행된[백령진지]에 ‘백령도의 두무진은 해로의 지름길이요,비대기가 편리하여 해적이 출입하는 문지방 이다’고 적혀 있듯 백령도는 예부터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포구로 해적들이 자기집 드나들 듯 했던곳이다. 그후로는 두무진앞 산등성이에 기와집으로 요망대를 짓고 해적선의 출몰사항을 망 보았다고 한다.
마을 서쪽 해발 143고지에는 일제때 일본군이 주둔하여 망을 보던 요망대가 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당시요망대는 일본에서 중국 대력까지 부설된 해저전선의 감시를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에도 동쪽에 있는 163고지와 기타 고봉들에는 해군기지가 설치되어있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두무진은 농토가 없는 작은 산간벽지의 포구로 어업을 전업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들어오는 망골재를 낮추고 도로를 넓히면서 두무진의 기암절경을 찾아오는 관광객드링 날로 급증하고 있다.1913년부터 법정리인 연화리에 속해 있다가 현재 30여 가구와 90여명의 주민들이 연화3리로 분리되어 살고 있다.
백령도 동남쪽 진촌리 사곶마을 해변에 위치한 사곶의 사빈은 주로 석영으로 구성된 모래가 펼쳐진 길이 2km,폭0.2km(썰물시)의 천연해수욕장이다.
단단하게 다져진 고운 백사장이므로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달려도 바퀴가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그런이유로 6.25전쟁때에는 천연비행장과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천연비행장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더불어 전세계에 두곳밖에 없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 사곶의 사빈은 군사통제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런까닭에 자연 그대로 모습이 잘 보존되었으며, 출입통제가 해제된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곶 해변에 심은 사방겸 방풍림이 자라서 검푸른 송림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하연 모래위에 붉게 핀 해당화가 그 운치를 더해준다. 또 도꼬마리.좀보리사초,한삼덩굴 등의 군락과 돼지풀,토끼풀,질경이,망초, 쑥,명아주,소리쟁이 등이 자라고 있다.
이곳은 울릉도나 홍도에 못지 않게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빼어난 바다경관을 지닌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동쪽에는 인천-백령도 사이를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이 닿는 뱃터,용기포가 있다.백령도의 관문이라 할수 있는 용기포에는 북한 어선이 전시되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이곳이 북과 대치한 서해 최북단 지역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용기원산 뒤에는 선박들의 길잡이 등대가 자리하고 있고,돌로 솟대같이 쌓은 백령도의 상징탑 2개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곶마을에는 사곶냉면집이 유명한데 순메밀로 냉면을 뽑는 기계가 있으며 육수와 돼지고기 맛이 아주 일품이다.
오금포와 중화동 포구 남쪽해안은 우리나라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보기 힘든 둥근 자갈들이 해안을 덮고 있는데,남쪽으로 1km정도 형성된 이곳이 바로 ‘콩돌해안’이다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불리는데 색상이 백색,회색,갈색,적갈색,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어 해안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처럼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쇄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규암으로 이루어진 거친 돌들이 얕은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계속적인 왕복 운동을 하면서 마모되어 매끈매끈한 자갈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콩돌자갈은 간조시 육지로부터 조립질 자갈대,세립질 자갈대 및 중립질 자갈대 순으로 해안선에서 평행하게 발달하였다.
조립질 자갈대는 약 6m 내외의 폭을 가지고 있으며 자갈의 작경은 8-64mm 아다.세립질 자갈대는 폭이 8m정도이고 자갈의 직경은 4-19mm 이다. 중립질 자갈대는 폭이 약 1m ,자갈의 직경은 7-40mm 이며 하부층에는 모래층이 있다.
내륙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있으며.백령도 해안순환 도로가 놓여있다. 주변은 농경지이고 식생은 백령도으 다른 지역과 유사하나 길가에는 머위군락,소리쟁이군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민가의 소구릉을 중심으로 오감주 나무가 분포되어있다.
콩돌해안은 북한 함경남도 이원 해안에도 있는데,북한에서는 이를 천연기념물 제 28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백령여행사에서 정보를 발췌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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