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왕릉

소령원 수길원

풍매화1 2007. 10. 25. 18:07
소령원(昭寧園, 숙종의 후궁, 영조의 생모) 총·능·원·묘기행

2007/09/2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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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원(昭寧園, 제19대 숙종 후궁 숙빈최씨)


국가 사적 제358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번지

  소령원(昭寧園)은 조선 21대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1670~1718)의 원소(園所)이다.

  숙빈최씨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현종 11년(1670) 11월 6일 태어나 7세에 입궁하여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숙종 20년(1694) 9월 13일 창덕궁에서 영조를 낳았으며, 숙종 44년(1718) 3월 19일 춘추 49세로 돌아가 그해 5월 12일 당시 양주 땅이었던 지금의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지냈다. 효심이 지극한 영조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묘소 동남쪽에 시묘막(侍墓幕)을 짓고 친필비와 비각을 4곳에 세웠다.

  영조 1년(1725) 어머니를 위해 육상묘(毓祥廟, 현재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 칠궁을 건립해 어머니의 신판을 봉안하고 그 옆에 여막을 만들게 하였다. 처음에는 소령묘로 불렀으나 1753년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개칭하면서 원으로 승격시켰다.

  원역(園域)은 산기슭 중단부에 동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봉분 뒷편에 담장을 설치 하고 봉분의 양쪽으로 석호(石虎)·석양(石羊)을 각각 2필씩 배치하였다. 봉분 정면에는 비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일렬로 놓여 있고 그 좌우로

망주석, 문인석, 석마(石馬)가 대칭으로 배열되어있다. 석물들이 전체적으로 간략한 형태를 띠고 있고 사각의 장명등 기둥과 석마(石馬)의 다리사이가 막혀있는 점등으로 보아 조선후기 석물 형태를 살펴 볼 수 있다.

  원소(園所) 아래 동북방으로는 비각 2동이 있으며 동쪽방향으로 중앙에 정자각(丁字閣)과 왼쪽에 수복방(守僕房)이 배치되어 있다. 수복방은 조선시대 원소 중 소령원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진입로 초입에는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신도비가 보호각으로 보호되고 있다

수길원(綏吉園, 영조의 후궁, 진종의 생모)

수길원(綏吉園, 제21대 영조 후궁 정빈이씨)


국가 사적 제359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6번지

  수길원(綏吉園)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인 정빈이씨(1693~1720)의 원소(園所)이다.

  정빈이씨는 이준철(李竣哲)의 딸로 숙종 20년(1694에 태어나 1701년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후궁이 되어 1719년 2월 15일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을 낳았으나 진종은 10세에 돌아가시어 파주 영릉(永陵)에 모셨다. 정빈이씨도 병환으로 경종 1년(1721 11월 16일 춘추 28세로 돌아가 그 해 12월 14일 당시 양주시 관할이던 지금의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 지냈다. 1725년 영조 때 빈에 봉하여 졌고, 칠궁 안의 연호궁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원역은 산기슭 중단부에 서남향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 뒤편으로 담장을 설치했다. 봉분 정면으로 비석, 상석, 장명등이 일렬로 배치되었고 양쪽으로 망주석,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동남측 하단부에 남향으로 정자각(丁字閣)을 세웠으나 현재는 기단부만이 남아 있고 서남 측으로 수복방(守僕房)이 있었으나 역시 주춧돌만 남아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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