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왕릉

영릉과학기구

풍매화1 2007. 10. 8. 17:06
▶ 조선시대 주요 과학 기구 ◀


                              - 영릉(英陵)의 세종전 앞에 있는 과학기구이다. -


1) 혼상(渾象)

 

세종 19년(1437년) 경복궁내에 만든 혼상은 오늘날 지구본과 같이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와 황도좌표의 각도로 둥근 구면위에 표기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천문기기이다.

이 둥근 혼상을 회전시키는 축은 지구의 자전축인 북극(북극성 방향과 남극 방향이 일치하도록 설치되어있다. 따라서 혼상에 그려진 별자리도 시간에 따라 지평환의 동쪽에서 떠오른다. 또한 천체가 남중(자오선을 통과)할 때는 자오환을 지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평환 밑으로 지는 모습이 재현되어 하루 밤 동안 별들의 운행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종 때의 혼상은 물의 흘러내리는 힘을 이용하여 자동적으로 하루에 1번씩 회전시킴으로써 하루 동안 하늘의 움직임과 같게 하여, 이 혼상을 이용하면 밤의 시간과 1년 동안의 절기 변화를 측정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세종 때 만든 혼상은 현존하지 않지만 문헌자료를 근거하여 야외에 전시할 목적으로 실제(지름71.6cm)보다 크게(지름120cm)청동으로 제작하여 1,464개의 별을 새겨 복원한 것이다.(2004년 5월)

 

2) 간의(簡儀): 천문관측기

간의는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각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이다. 세종대왕은 천체를 관측하고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기 위한 왕립 천문대인 간의대를 설치하고, 많은 천문 기구들을 만들게 하였는데, 세종14년(1432년)에 먼저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목(木)간의를 시험 제작하여 한양(서울)의 북극고도(위도)를 측정한 후 청동으로 간의를 제작하여 간의대 위에 설치하였다. 원래 간의는 1275년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처음 만든 천문의기로서 오늘날의 천체망원경식으로 해, 달, 5행성과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였다. 동그란원 3개의 구멍을 일치시켜서 북극성을 맞춘다.

 

 

3) 소간의

 

소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고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체관측기기이다.

세종 16년(1434년)에 이천, 정초, 정인지가 제작하여 경복궁 천추전과 서운관에 설치하였다. 소간의는 간의보다 크기가 작고 이동이 편리하도록 더욱 간편하게 만든 것으로 눈금이 새겨진 둥근 고리 모양의 환, 즉 사유화나 적도환, 백각환, 규형, 기둥과 밑받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도좌표계와 지평좌표계로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천체관측기기로 해, 달, 5행성과 별의 위치, 고도와 방위를 측정할 수 있다.

소간의는 세종시대에 독특하게 창제한 세계유일의 천체관측기기이나, 현존하는 유물이 없어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국내 최초로 복원하게 된 것이다.



4) 혼천의(渾天儀): 별자리 측정기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천체위치측정기로서 일월오행성(日月五行星)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쓰였던 천체관측기기이다. ‘혼천’은 하늘이 달걀껍질처럼 땅을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다. 혼천의는 오래 전부터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으나,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록(세종1433년)에 정초, 박연, 김진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다. 그후 개량을 거듭하여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하는 시계와 연결하여 혼천시계로 사용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이민철, 송이영등이 이를 개량하여 경희궁에 설치하였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 혼천의는 국보 제230호 송이영의 혼천시계중 혼천의 부분을 2.5배 정도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구조는 눈금이 새겨진 둥근 고리 모양의 환, 즉 지평환, 황도환, 적도환, 백도환, 받침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관천대: 천문관측대, 간의대, 첨성대

 

혼천의, 혼상, 간의, 규표 등을 설치하여 천체를 관측했던 곳이다. 세종대왕이 아들(문종)과 함께 이 곳에 올라 아들에게 관측법을 가르치는 열성을 보이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는 왕립 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을 2곳에 두었는데, 특히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 서운관에 대간의대,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소간의대를 설치하고, 관원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진왜란 때 모든 관측시설이 불타버려 숙종 14년(1688년)에 다시 관측대 2개를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창경궁 관천대(보물 제851호)이며, 이것은 그 관천대를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다.

 

6)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 19년(1437년)에 제작한 해시계의 하나로 지남철이 없어도 남쪽 방향을 결정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천문기기이다. 남북 기둥을 잇는 사유환측은 지구 자전축인 하늘의 북극방향과 일치하고 동서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축 끝에 추를 달아 정남일구의 수평을 잡도록 하였다. 지평환에는 24방위와 24절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유환 양 측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어 정오에 태양의 남중고도를 측정할수 있다. 사유환 안쪽에는 적거와 남북방향으로 움직이는 규형이 있어서 일 년 동안의 24절기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의 시각을 알 수 있다. 시각을 알아보려면 사유환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규형을 남북방향으로 움직여 규형의 남쪽 구멍을 통과한 태양 광선이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려져 있는 시반면에 닿을 때 정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의 중앙에 나타난 시각을 읽으면 된다. 세종 당시에 제작된 정남일구는 남아있지 않으며, 이것은 세종대왕실록에 기록된 치수를 3배로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2002년 5월 15일)


7) 현주일구: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는 세종19년(1437)에 창제한 해시계 중 하나이다.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그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하루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시반은 양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다. 시반에 나타나는 가는 줄의 그림자가 여름철에는 시반의 윗면에 나타나고 겨울철에는 시반의 밑면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윗면의 눈금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사용하고 밑면은 추분에서 춘분까지 사용한다. 현주일구는 세종 당시에는 휴대용 해시계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크기가 손바닥만한 것이었지만, 야외 전시를 위해서 문헌에 기록된 치수의 7배로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8) 앙부일구: 공중용 해시계

 

앙부일구는 세종 19년(1437년)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앙부일구란 시반의 모형이 솥을 받쳐 놓은 듯 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그림자를 받는 면이 오목하다 해서 일명 ‘오목 해시계’ 라고도 하며, 영침의 그림자가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와 그때의 시각을 가리킨다. 이 해시계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중인 앙부일구(보물제845호)를 본뜨고, 오늘날의 시제(時制)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9) 규표

 

 

 

세종시대에는 많은 천문의기들을 제작하여 하늘의 현상과 별들의 운행을 관측하였다. 규표는 일 년의 길이가 정확히 몇 날인가(365일 1/4날)와 24절기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다. 수직으로 세운 막대표가 정오에 만드는 해의 그림자 길이를 수평으로 눕힌 눈금이 있는 규로 제서 가장 긴 때를 동지, 가장 짧은 때를 하지로 정했다. 동지와 하지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날을 봄에는 춘분, 가을에는 추분이라 하고, 이 4절기를 뺀 나머지 20절기를 그 사이에 약 15일 간격으로 배열한 것이다. 하루 중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은 때는 정오이며, 규를 설치한 방향은 정확하게 그 지점의 남북방향이다. 이 규표는 세종 19년(1437년)에 만든 것을 1/10으로 축소 복원한 것이다.


10) 일성정시의: 해시계, 별시계

 

 

조선 세종 19년(1437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천, 장영실이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체관측의기이다.

이는 태양시와 항성시를 측정하는 주야겸용의 측시기로 해시계의 원리와 항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규칙적으로 돈다는 별시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한양(서울)의 북극고도(위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세종시대에 모두 4개의 일성정시의가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될 때 함께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 일성정시의는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국내 최초로 복원.제작한 것이다.

낮에는 해시계로 쓰고, 밤에는 별시계로 써서 시간을 측정한 것으로 오늘날의 분에 해당하는 시각까지 정확하게 잴 수 있을 만큼 정밀한 것이다.

 

 

11)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도

 

하늘의 형체를 본떠 황도(黃道)부근을 12지역으로 나눈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상의 지역인 분야(分野)에 맞추어 별자리의 위치와 크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천문도(天文圖)이다.

앞면은 태조 4년(1395년에, 뒷면은 세종15년(1433년)에 제작되었으며, 검은색돌 양면에 새겨져 있다. 천문도의 맨 윗부분에는 해와 달에 달한 기록이 있고, 가운데에는 1,467개의 별이 커다란 원 안에 표시되어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의 이름과 천문도 작성의 역사적 배경, 제작자, 제작년월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국보 제228호) 것을 본떠 제작한 것이다.

 

12)풍기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13) 자격루: 물시계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시계이다. 현재(덕수궁)남아 있는 물시계는 자격루의 본래 모습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격루 가운데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자격장치는 사라지고 일정하게 물을 흘려 시간을 재던 누기 즉, 물시계만 전해지고 있다. 자격루 이전의 물시계는 사람이 계속 지키고 있다가 일정한 시각이 되면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었다. 밤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6시에 28번, 밤시간이 끝나는 오전 4시에 33번을 쳐서, 초경에 울리는 종을 인경이라 하여 성문을 닫았고, 오경의 것을 바라라하여 성문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자격루는 세종 16년에 장영실이 중국에 가서 소송의 물시계 원리를 연구공부한 후 돌아와 만든 것을 다시 개량하여 중종 31년에 새로이 만들었고, 그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14) 수표

 

세종 23~24년에 걸쳐 만든 것으로 하천 수위 측정기구이다. 강이나 하천에 설치하여 수위를 조사하여 천재지변에 대비하였다. 동그란 홈을 3개 파서 수위가 맨위에 있는 첫째 홈에 있으면 홍수, 둘째 홈은 평상시, 셋째 홈은 가뭄이라 관측했다.

한강과 청계천(수표교)에 설치하였다.


15) 측우기: 강우량 측정

 

비가 내린 양을 재는 기구로 1441년(세종23) 발명된 세계 최초의 우량계이다.

전국의 강우량을 정확히 분석하여 농사에 참고자료로 활용하였다.

이곳에 있는 것은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의 복원품이다.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측우기로서는 세계최초이다. 1639년 이탈리아 가스텔리가 개발한 것보다 200년 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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