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탐방

경천사 10층 석탑

풍매화1 2007. 7. 16. 10:21

몽골(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 충목왕 4년인 1348년 경기도 개풍군 부소산 자락에 지어진 경천사 탑의 조성 계기는 개운치 않다. 고려를 짓누른 친 원나라파 세도가들의 발원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시주자인 강융과 원사 고룡봉, 대화주인 스님 성공, 육이 등이 1층 탑 몸체에 새긴 명문 내용이 남아있다. “대화엄 경천사에서 원나라 황제와 태자 전하의 만만세, 황후 폐하의 천추만세 등을 축원합니다. 또 비가 순하게 내리고,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 빛을 발하고, 법륜이 항상 전하기를 축원합니다… 지정 팔년 무자년 삼월…”

경천사탑은 기실 당시 원나라 황제인 순제 일족과 빌붙은 고려 아첨배들의 만수무강을 기리려 한 탑인 것이다. <고려사 열전>을 보면 발원자인 대시주 강융은 진주 출신으로 딸이 원나라 재상 탈탈의 소실이 되자 진녕부원군 존칭까지 얻으면서 한껏 세도를 부렸다. 또 고룡봉은 원에서 벼슬살이한 경력을 업고 돌아와 갖은 권세를 부리다 공민왕 때 잡혀 죽었다고 나와 있다(<고려사>는 둘을 역적으로 기록했다). 고려인 출신으로 순제의 후비가 된 기황후의 원찰이었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경천사가 몽골 지배 이전부터 왕이 자주 행차했던 왕찰인데다, 당대 세도가들이 발원한 것이었으니 탑 자체는 당대 최고의 건축, 공예기술이 집약되었다. 기단부와 3층까지 사면이 튀어나온 몸체에 목조건축의 기와지붕과 현장법사의 서유기 장면들, 설법 장면, 나한상 등을 새김하고, 5~10층까지 생생한 여래상 조각을 돋을 새김한 탑은 사방팔방으로 팔작지붕이 날렵하게 뻗어가는 복잡한 아(亞)자형 평면에 안정감과 정교한 조각기술이 어우러진 불가사의한 예술적 결정체였다. 원 장인들을 동원했다는 세간의 속설과 당대 자형 기단 평면을 불탑에 썼던 원나라 라마 불교 백탑 양식으로 미뤄 중국양식을 모방했다는 게 이전 통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라 석탑에서 꽃핀 옛 장인의 독창적 디자인 감각이 다시 솟구친 걸작이란 평가가 적지않다. 기단 뿐 아니라 탑 몸체까지 사방으로 튀어나온 기둥과 복잡한 기와형 장식을 쓴 경우는 중국에 예가 없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탑의 부조상을 일컬어 “인물은 놀랍도록 살아있는 듯하며 형용이 또렷하며 정교함이 천하에 둘도 없다”고 극찬하고 있기도 하다.

탑은 조선 왕실과도 인연을 맺는다. 태조 이성계가 경천사를 신덕왕후 강씨의 처소로 삼아 드나들었기 때문인데, 훗날 강씨의 영정이 이 절에 봉안되어 세종과 세조도 출입했다고 전한다. 소재구 국립 고궁박물관 관장은 “저 유명한 서울 원각사터 백탑이 경천사 탑을 빼어닮은 것도 기실 경천사의 사적들을 최고의 불교 사적으로 받아들이고 재활용하려했던 왕실의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경천사가 허물어지면서 홀로 산 자락에 남아있던 석탑의 가치에 눈독 들인 것은 구한말 일본인들이었다. 일찍이 1902년 이곳의 고적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남긴 미술건축사가 세키노 다다시는 <조선미술사>에서 “고려 탑파 중 가장 변화가 풍부하고 세련된 기교를 자랑한다… 이런 종류의 건축은 중국에도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호평을 들은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는 1906년 고종 황제 하사품이라고 강변하면서 총칼을 들고 주민들을 위협해 탑을 해체하고 도쿄로 가져가버린다. <한국문화재 수난사>의 지은이 이구열씨의 말대로 임금님을 판 치밀한 문화재 약탈작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단부에서 3층부분까지만도 각 층 몸체가 20여 조각이나 되는 석탑은 운송과정에서 크게 훼손되고 복원조차 못한 채 일본 땅에 10년 이상 처박혔다. 18년 하세가와 조선 총독의 노력으로 다시 조선땅에 돌아왔지만 역시 복원은 엄두조차 못낸 채 60년까지 경복궁 회랑에 방치되었다. 60년 걸출한 복원 전문가 임천의 노력으로 우뚝 섰지만, 대체한 쇠부재가 녹이 슬고 미숙한 복원기술로 곳곳에 틈이 생겨 결국 95년 재해체하고 10년간의 대수술을 받은 것이다. 국립 문화재 연구소 김사덕 연구관은 “단지 부재 사이가 1mm만 어긋나도 전체를 쌓을 수 없어 5~6년간 조립 실험을 하느라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현대 기술로 복원 조립하는 데만 10년 걸린 탑을 선조들은 도대체 어떻게 깎아서 쌓았을까.

 

** 120년후 조선의 원각사지 10층석탑의 모델이된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현재 탑골(파고다)공원에 위치 국보2호이며 유리각으로 보호(비둘기배설물로 인한 부식 방지)되고 있다

연산군때 원각사를 폐지하고 기생들의 향연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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