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달려간 경주의 첫 코스 불국사...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였는지 날이 추워서 였는지 지금까지 불국사를 여러차례 갔지만 오늘처럼 한가했던 날이 없었던것 같다..
덕분에 좀 더 여유롭게 세심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몇년전엔 다보탑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석가탑을 보수하고 있었다
불국사는 경주시 동남 12km, 토함산 남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 법흥왕22년(535) 개산(開山)이라 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덕왕10년(751)에 김대성(金大城)이 석굴암과 동시에 건설하였다.
남향인 돈대 위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쌍탑식의 가람배치가 되어 있고 전면의 청운교, 백운교라는 석조아치에 의한 계단을 오르고 나면 자하문이 있다.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옛날에는 보랑(步廊)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있고 그 끝에는 범영루(泛影樓)가 기묘한 석축의 기주 위에 서 있으며 그 서쪽 외측에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서원이 있다.
애초에는 수십 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목조건물은 완전히 타버려 찬란했던 옛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화강암의 초석∙돌담∙다리만이 창건 당시의 것이다.
대웅전은 조선 때의 재건이고 기타 건물은 근래의 것이나 선려한 채색장식이 베풀어져 있다. 대웅전 앞 동서의 석탑은 신라 성기의(8세기 중엽) 대표적 석탑. 동은 다보탑(국보20호)으로 목조팔각탑을 본딴 석탑이나 정교한 석조의 기교와 형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연 뛰어나고, 서는 석가탑(국보21호)으로서 석공의 아내 아사녀(阿斯女)의 슬픈 애화가 얽혀 있어 무영탑이라고도 한다. 근년 탑신으로부터 사리용기가 발견되었다
이 두 탑사이에 같은 시기의 팔각석등롱이 있다. 대웅전의 북에는 강당에 해당하는 무설전(無說殿)이 일제 침략전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허물어져 빈터만 남아 있으며, 그 안에는 관음전, 비로전(毘盧殿)이 있다. 비로전 안에 있는 2체의 반장육(半丈六)의 금동불좌상 중 비로자나불(毘盧舎那佛, 국보26호)은 본래 대웅전의 본존이라 하며 높이 1.79m, 편단우견(偏袒右肩), 결가부좌(結跏趺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맺고 있다.
또 아미타불(국보27호)은 극락전(위축전[爲祝殿]) 본존으로 높이 1.68m, 좌법은 같으나 왼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바른손은 시원인(施願印)을 나타내고 있다. 또 극락전 앞의 안양문(安養門)을 나서서 연화교(蓮花橋), 칠보교의 계단을 내려온 곳에 있는 석조사리탑(보물61호)은 한때 일인에게 팔려갔다가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인데, 아마도 고려시대(10세기경) 승려의 사리를 넣어둔 부도(浮屠, 石塔)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는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김대성이 그의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세웠다는 또 하나의 절 석불사...그후 일본인들에 의해 석굴암이라 불리워지게 된다.
자랑스런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인데 석굴암 입구에 세워진 건물때문에 신비로움이 반감되는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본연 그대로의 굴이 아닌 건물을 통해 들어서니 그 옛날 신라시대 아름답고 장엄했을 부처님의 모습을 잃어버린듯 했다.
서산의 마애삼존불의 지붕을 헐어냇듯이 석굴암을 감싸고 있는 외관을 헐어낸다면 그 신비로움이 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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