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탐방

임진각-증기기관차

풍매화1 2010. 10. 9. 21:55

 

 

잡초에 덮여 급속하게 부식되고 있는 이 기관차를 2004년 2월 6일 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제78호)하고 포스코의 기술을 동원하여 보존처리한 다음 아픈 동족상쟁同族相爭의 증거물로 보존하기위해 경기관광공사의 노력으로 임진각 독개다리 입구의 현위치로 이전하여 오늘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1953년 전쟁이후 장단역에 방치되어있던 증기기관차 모습]

 

이 증기기관차는 일본 가와사키사가 제작한 갈아 15m, 폭 3.5m, 높이 4m의 80톤 중량을 가진 마터(MOUNTAIN)2형 증기기관차입니다.

 

이 기관차의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2005년 문화재청과 포스코간에 '1문화재 1지킴이'협약을 체결한 다음, 상태를 정밀조사하고 구조보강과 녹 제거, 보호코딩제를 도포하는 방식으로 2008년 12월에 2년간에 걸친 보존처리 작업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 북으로 머리를 둔 모습]

 

 

이 기관차의 최후기관사였던 한준기선생님은 당시 23세였던 청년이 82세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한선생님은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46년 2월부터 경의선을 오가는 증기기관차의 기관사가 되었습니다. 서울을 출발해 임진강 철교를 건너 신의주까지 오가셨던 분이지요.

“전쟁당시 기관사들은 기관차와 함께 국군이 진군하면 함께 진군하고 남하하면 함께 남하했습니다. UN군의 수송본부의 명에 따라 화차에 탱크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날랐습니다. 1950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저는 개성에 있던 이 기관차로 평양으로 가서 군수물자를 운반하라는 수송대대장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마침 중공군의 개입으로 평양까지 가지 못하고 황해도의 평산도 한포역에서 후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시 20분, 마지막으로 25량의 화차를 견인하여 한포역을 출발하여 22시에 장단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장단역에서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저는 화물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기관차에서 내렸고 잠시 후 기관차에 무차별 기관총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UN군 작전에 따른 거겠지요. 기관차에 남아있었다면 저도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기관차는 물통과 증기통이 모두 구멍이 뚫려서 운행이 불가해졌습니다. 저는 자식 같았던 그 기관차를 두고 문산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열차로 남하할 때 북한동포들이 기관차와 화물칸의 지붕에 까지 가득 타고 남으로 이동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열차의 운행 중에 추락하여 수십명이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보다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준기할아버지의 회고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준기할아버지의 이 증기기관차에 기관총 세례가 퍼부어지던 그날이 경의선의 마지막 철마가 멈춘 날이 된 것이지요.

 

이 철마는 이제 기력을 잃고 박제된 모습으로, 부서져 교각만 남은 독개다리를 바라보며 북으로 머리를 둔 채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의선을 달린 마지막 철마, 이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1,020여개의 총탄자국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 분단된 조국의 한을 증언하면서 휘어진 쇠바퀴가 다시 펴져서 북으로 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진각 전경]

 [교각만 남은 임진각 독개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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