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탐방

임진강 황포돛배

풍매화1 2010. 7. 6. 14:52

 

그리움이 묻어나는곳 임진강을 따라가는 황포돛배입니다

 

적성면 두지리의 두지나루터는 일반인이 임진강을 유일하게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곳입니다

6.25 이전까지만해도 고랑포 일대는 아주 번화한 곳이었으나 전쟁후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가 황포돛배를 띄우면서 개방이 되었습니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남북한의 7개 시군을 통과해 한강으로 합류하고 있고 연장길이가 254km입니다만 강의 가운데를 삼팔선이 자르고 있고 우리에겐 반쪽으로만 인식이 되다보니 한반도를 통틀어 7번째로 긴 강이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강마다 저마다 품은 이미지가 있지요. 서울의 번영을 상징하는 한강, 순수한 서정의 섬진강,,

임진강은 아마 우리 민족의 비극과 또 통일을 떠올리는 강의 이미지라 할 수 있겠죠?.


혹시 여러분은 121 사태를 알고 계십니까?

68년 1월 21일 청와대 폭파, 또 암살 목적으로 북에서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인데, 바로 이곳 임진강 유역중 유일하게 수심이 낮은 고랑포 여울목을 이용했습니다.

6.25당시 이 고랑포여울목으로 탱크가 지나가기도 했을정도로 수심이 낮습니다. (건기에는 수심50cm 정도)


그러나 뱃길이 끊기기 전, 6.25가 발발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임진강은 굉장히 평화로운 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이곳의 이름은? 바로 두지나루, 두지나루터입니다.

땅 모양이 뒤주를 닮았다해서 이름이 두지나루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박을 통해 이곳 문산지역에서는 대두를 비롯한 곡물이 월등히 수출되었고, 강화산 소금같은 서해안의 수산물, 생활필수품이 수입품의 주종을 이뤘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역에 사용했던 배가 바로 여러분이 타실 황포돛배입니다.


이곳의 황포돛배는 조선시대 조운선을 모델로 15단계 전통방식으로 재현되었고 전과 다른점이 있다면 동력으로 움직인다는것입니다.

이 황포돛배는 물감이 귀했던 당시 광목에다 황토물을 들였는데 이렇게 황토물을 들이게 되면 몇가지 효과가 있는데 좀을 방지하고 질기게 되어 비바람을 맞아도 썩거나 변하지 않았고

또 황포의 미세한 구멍을 막아주어 바람의 손실도 줄일수 있고 또 멀리서도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특징은 바닥이 평평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배를 평저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평저선의 특징은 물 깊이가 무릎정도밖에 차지 않는 강의 상류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 바닥이 평평하고 탄력있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닥이 땅이나 돌에 부딪혀 충격을 받아도 바닥송판이 움푹 들어갔다가 다시 펴질 수 잇도록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배 바닥에 설치하는 구조부재인 곱장쇠를 약간 활처럼 굽게하여 붙여서 바닥의 판자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두지리 선착장-거북바위, 빨래터바위-자장리적벽-괘암-호로고루성-고랑포여울목


거북바위 빨래터바위는 - 말그대로 거북이 모양을 닮은 바위, 빨래를 하던 바위입니다


 


호로고루성은 -

호로고루는 오래된 성을 뜻하는 호로(瓠蘆)와 성을 뜻하는 고루(古壘)가 결합된 말로 고구려 말입니다.

고구려 성으로 토성과 석성이 결합된 특이한 성벽구조를 갖추고 있고 다량의 고구려 기와 및 금동불상 출토되었습니다.

말을 타고 바로 임진강을 도하할 수 있는 여울목에 자리잡고 있어 평양-개성-서울을 잇는 최단거리상의 중요한 관문에 해당되었을것입니다.

(또한 고구려 기와층 바깥쪽에 7세기후반경 신라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외벽이 잘 남아있어 5세기경에 축성된 고구려성벽과 신라성벽의 축성기법의 차이점이 비교된다.)


적벽은

약 60만 년 전 분출된 용암이 흐르다가 냉각된 후 불규칙하게 갈라진 면이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면서 검붉은 돌기둥모양의 적벽을 형성한 것입니다.


이곳에 개방된 구간은 임진강 총 254km 중 총 11곳의 적벽 중 한곳으로 제일 높은 곳은 15m에 이르며 절벽의 모양이나 경관이 다른 곳보다 뛰어납니다.

따라서 예전부터 이 지역 양반들과 사대부들은 이곳 임진강 적벽을 유람하며 뱃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진경산수화가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연강임술첩’, ‘임진적벽도’등의 화폭에 담기도 했다합니다.

‘임진적벽도’는 공개된 그림이 아닙니다.  이 그림은 현재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보관중이며 그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그림의 복사가 어려워서 저 급수탑에 본래의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빨래하는 여인의 모습이라던가. 다른 모습을 그려 저작권 시비를 피한 것입니다. 


봄과 가을에는 적벽사이로 진달래와 철쭉, 돌단풍이 피어 절정을 이루기도 합니다.


괘암은 - 미수 허목이 글을 새겼다는 괴암 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호는 미수(眉?), 이름은 목(1595∼1682: 선조 28년∼숙종 8년). 그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학자이자 남인(南人)의 영수로 서인(西人)이던 우암 송시열과 벌어진 예론(禮論) 관련 논쟁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며 대학자입니다.

 

 

 

 

 

 

 

 

< 임진나루의 뱃사공이야기 >


임진나루는 옛날 한양에서 송도를 거쳐 의주로 가는 국도로 교통이 빈번한 곳이었다.

이곳의 뱃사공들은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옷차림과 거동만 보아도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  맞추기로 유명하였다.

하루는 다른 곳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는 짓궂은 사람이 얼마나 잘 알아보는지

임진나루 뱃사공을 시험하고자 신분을 속이고 양반으로 가장, 의관을 갖추고 그를 찾아

“여보게, 나를 좀 배로 건너 주게,” 하고 반말을 하였다.

그러자 김씨라는 뱃사공은 부지런히 배를 대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구보고 반말이냐며 화를 내는지라 변장한 사공이“이놈아! 감히 누구 안전에서 행패냐!” 하니,

“너는 아무리 양반인 체 하여도 나와 같은 뱃놈에 불과 하다.” 하였다.

그래“네가 어찌 그런 것을 아느냐?” 하고 반문하자

임진강의 뱃사공이 하는 말이

 “너의 수염이 강바람에 한쪽으로 구부러졌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것을 보아

너는 나와 같은 뱃놈이다.” 하니

참으로 귀신같이 맞힌다면서 서로 껄껄대고 웃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임진강은 천년을 하루같이 흐르는데 오직 사람만이 세월을 헤아립니다

임진강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우왕의 어머니인 반야의 이야기, 미수허목과 우암 송시열과의 일화..

신라왕중 유일하게 경주를 떠나게된 경순왕이야기등..

임진강 황포돛배에 오시면 임진강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습니다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 민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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