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라산의 유래
도라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말하려면 경순왕을 알아야합니다
파주시지(市誌) 등에 따르면 도라산이란 이름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망국의 한과 서라벌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927년 후백제 견훤의 공격으로 경애왕이 죽고 경순왕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국운을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경순왕은 935년 "무고한 백성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며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한다. 왕건은 신하들을 이끌고 송도(개성)를 찾아온 경순왕을 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혼인시켜 부마로 삼았다. 그리고 정승공(政承公)으로 봉하고 경주를 식읍(食邑)으로 내렸다
하지만 나라와 아들을 모두 잃은 경순왕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삼국사기는 경순왕의 태자가 항복에 반대해 통곡하다가 금강산에 들어가 죽었다고 전한다. 그가 마의태자다. 낙랑공주는 시름에 빠진 경순왕을 위해 남쪽이 잘 보이는 산 중턱에 영수암(永守庵)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지었다. 영원히 이곳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경순왕은 매일 이곳을 찾아 신라를 그리며 상념에 빠졌다. 그렇게 이 산은 도라산, 신라의 도읍인 서라벌을 그리는 산이 됐다.
경순왕은 고려 경종 3년(978년)에 숨져 도라산 인근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묻혔다. 그는 서라벌 밖에 묻힌 유일한 신라 왕이다.
경순왕
경순왕(敬順王, 897년[1] ~ 978년, 재위: 927년~935년)은 신라의 제56대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이며. 고려 초의 문신이다. 성은 김(金)씨, 이름은 부(傅)이다. 문성왕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飡) 효종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 계아태후이다. 경명왕, 경애왕의 이종 6촌 동생이다.
생애
927년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군에게 경애왕는 피살되었다. 이어 경순왕이 제위에 올랐다. 재위 시에는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을 살피고, 군신회의(群臣會議)를 소집하여 고려에 귀부(歸附)하기로 결정하고, 935년 고려 태조에게 항복했다. 경주(慶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며, 지금의 개성과 가까운 곳에 거주했다. 한편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에 임명됨으로써 고려 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에 위치해 있다.
경순왕의 왕후
소원왕후, 죽방왕후 박씨
예부시랑 박광우의 딸이라고도 전하는데, 정사 삼국사기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다. 박광우는 죽산 박씨로 되어 있는데, 죽산은 경기도 안성으로 신라 수도 경주와는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다. 죽방왕후을 신라 진골 출신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많으나, 죽방왕후의 출신은 명확하지 않다. 소원왕후라는 명칭은 죽방왕후가 사망한 이후에 고려에서 내려준 시호이다.
효목왕후, 낙랑공주 왕씨
낙랑공주(樂浪公主)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셋째 왕비 신명순성왕후 유(劉)씨의 장녀이다. 그녀는 고려 제3대 정종, 고려 제4대 광종의 어미니이다. 낙랑공주는 혼인 전에 안정숙의공주(安貞淑義公主)로 불리었으며, 혼인한 뒤에 낙랑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으로도 불리웠다. 삼국사기, 고려사에 따르면 935년 11월에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가 백관을 이끌고 고려에 항복하자, 태조는 자신의 장녀 낙랑공주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했다고 한다.
왕건과 성무부인 박씨의 딸 왕씨
왕건과 성무부인 박씨의 딸 왕(王)씨는 경순왕의 아내이다. 성무부인 박씨는 평주의 호족 박수경은 둘째 딸로 태어나 왕건에게 시집갔으며, 아들 넷과 딸을 하나 낳았는데, 딸 왕씨는 경순왕의 부인이 되었다. 경순왕과 결혼한 성무부인 박씨 딸 왕씨는 자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시호는 전하지 않는다.
별빈 안씨
별빈 안씨는 민담설화, 신라삼성연원보에 등장하는 경순왕의 마지막 부인이다.
가계
- 후궁 무명씨
- 1녀(육보(관성 육씨 시조)에게 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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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라산 평화공원 소개
도라산 평화공원은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 도라산역 인근 민통선 내 위치한 공원으로 2002년 도라산역 개방 시부터 구상하기 시작해 2006년 5월 12일 착공, 2008년 6월 13일 완공 후 2008년 9월 10일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습니다.
공원의 규모 9만9천여㎡에 자연생태공원이며 경기도민의 헌금, 헌수로 조성되었으며 앞으로 도라산 평화공원은 청소년들에게 DMZ의 역사를 통한 평화와 생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장 뿐만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만남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입니다.
도라산 평화공원에 오는 방법은 임진강역에서 내려 DMZ 관광안내소에서 신분확인후 도라산행 기차이용 도라산역에서 도보로 10분정도 이동, 혹은 임진각 또는 임진강역에서 파주시가 운영하는 DMZ안보견학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으며 공원 개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입니다.
평화공원은 한반도 모형을 한 7천246㎡ 규모의 생태연못과 전시관이 마련돼 있어 DMZ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에는 도라산의 역사와 DMZ 자연생태 자료 등을 최신 입체영상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또 2000년 광주비엔날레 초청작품으로 남북을 상징하는 2명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영국작가 작품 ‘유리된 극점’과 높이 32m의 상징조형물 ‘개벽(開闢)’이 야외에 전시돼 있습니다.
1천893㎡에 꾸며진 유실수원에는 95그루의 장단 복숭아를 심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역 특산물이 원형 보존되고 1만1천108㎡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이 3만1천350㎡에 조성한 통일의 숲은 한반도 모양의 통일동산, 태극 모양의 화합동산, 비둘기 형태의 평화동산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각 동산에는 구상나무, 전나무, 소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등 지름 10㎝ 이상 된 나무 1만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처럼 도라산 평화공원은 생태계와 공존하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공원입니다.
생태의 근원에 대한 상징 류신정 - 비상 - 공원 개장 1주년기념 설치 ,생명체의 근원인 물방울 ,바람,씨앗 ,정자등이 비상하는 은유적표현 DMZ의 낙관적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남과북의 화합의 상징 김연수-개벽- 진취적이며 영원한 빛을 형상화한것으로 남과북이 서로 화합하는 그림과 함께 대동단결하여 우리민족의 힘을 전 세계에 덜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관내에는 DMZ의 생태와 입체 영상등을 볼수 있습니다 평화공원안에는 사슴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끼 두마리가 태어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해병대 전적비 한국전쟁 당시 장단반도 사천강전투에서 경기도및 수도권 방어에 기여하다 전사한 776명의 호국해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 사천강전투 (1952. 4. 1 ~ 11.1)
사천강 전투는 1952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전초진지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을 때, 판문점으로부터 임진강 하구까지의 11km에 달하는 주저항선을 방어하던 한국군 해병대 제1연대(미 제1해병사단의 좌일선연대)가 주저항선 전방의 8개 전초진지에서 중공군 2개 사단(제194,제195사단)과 싸운 방어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해병대 제1연대는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중공군의 파상공격으로 말미암아 8개 전초 가운데 원거리 전초(주저항선 전방 3km) 4개를 상실한 후, 근거리 전초(주저항선 전방 1km) 4개를 확보하기 위하여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던 중, 이들의 재공격을 받게 되자 진내사격을 유도하여 막대한 타격을 가하고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고 있는 한국군 해병연대의 전초선을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한국군 해병연대는 휴전 시까지 사천강 동안의 전초와 주저항선을 계속 확보하게 되었다.
둘이 하나가 되어 희망이 나고 양태근 -임진강의 봄-
개장1주년기념 기획 전시,남과북에서 흐르는물이 만나 하나가 되어 사랑의 꽃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남과북이 소통하여 하모니를 이루자는 의미의 소리놀이터로 고몽벤치 소리반사경 재두루미와 물고기차임등이 있습니다
분단의 비극을 표현한 앤토니곰리 - 유리된 극점-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인간의 몸을 비행기 몸체로 형상화하여 1쌍으로 구성,남북한 통일에 대한 갈망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관내에 전시되어 있는 지뢰입니다
대전차 지뢰는 탱크나 차량 폭파용이며 대인지뢰는 사람에게 사용된 지뢰입니다
도라산 평화공원은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캔버스 같은 곳입니다
빈 화폭에 관람객 여러분들이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채워나가다보면 진정한 평화공원으로서의 가치가 빛날것입니다
모두에게 잊혀져가는 도라산평화공원이 아닌 누군가에게 불리워지는 평화공원이 되길 희망합니다
파주시문화관광해설사 민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