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2008년 9월 23일~26일
“여명을 뚫고 백제 속으로”
빛이 아직 어둠을 가르지 못한 시각, 사뭇 떨리는 마음으로 일산에서 공주로 출발을 했다. 혼자만의 여행이 얼마만이던가! 결혼 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느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평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이맘때쯤이면 백제문화제를 하겠구나 하고 백제 문화제 홈페이지를 열어 보다 눈이 번쩍 뜨일 3박4일 간의 백제 문화유산 대탐험의 일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선뜻 신청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속앓이를 해야 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두고 과연 혼자 떠날 수 있을런지...
하지만 문화유산탐험이란 너무나도 매력적인 카드가 나에게 집을 떠날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풋풋한 젊은 시절 첫사랑의 마음이 이러했을까ㆍㆍㆍ 운전대를 잡고 공주로 향하는 내내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 내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에 설레고 내가 좋아하는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이 또한 가슴 벅차오름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공주의 공산성.
1500여년전 백제로 들어가는 타임머신의 첫 관문이다. 내게 백제는 어떤 곳이었던가.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의 백제를 알게 해 주었던가!
“잃어버린 왕국 백제” ( 내가 알고 있는 백제이다.)
주몽의 아들 유리에게 그들의 터전을 양보하고 소서노는 그녀의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해 정착한 곳이 서울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개로왕이 죽임을 당하고 500년 한성백제의 역사는 사라지고 만다. 거기에 백제의 의자왕은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3천 궁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알고 있는 백제였다.
그러나 공산성 발대식에서 남긴 관계자분의 말씀이 나의 이러한 생각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느 왕조든 망하지 않은 왕조는 없다. 백제가 그러했고 고구려도 신라도 고려도.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조차 없었을 것이다. 475년~660년 웅진ㆍ사비시기의 남겨진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망의 왕조가 아닌 그들이 남긴 업적과 문화를 돌아보라는 말씀, 나는 마음을 열고 새로운 눈으로 백제를 보고자 하였다.
공산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남아 있는 백제의 토성. 개로왕이 죽고 475년 추운 겨울 문주왕은 어떤 심정으로 웅진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싸움에 패하여 힘들고 지친 백성들을 이끌고 다신 그와 같은 참상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차령산맥 깊은 곳으로 터를 잡으려 했을 것이다. 산성이 완성되는 동안 춥고 시린 겨울을 견디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시려온다. 문주왕도 뒤이은 삼근왕도 짧은 삶을 보내야 했으니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과정의 힘겨웠던 삶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허나 무령왕 대에 들어서면서 백제는 다시 부흥을 꿈꾸게 되고 무령왕릉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들은 실로 대단하다.
자칫 잘못했으면 일본에 의해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을 무령왕릉.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 후손들에게 그 위대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무령왕릉을 지키던 진묘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60여 년간의 짧은 웅진시기를 접고 성왕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사비로의 천도를 강행한다. 그 후 100여 년간의 사비시대는 백제 문화의 가장 찬란함을 남기게 되었다.
부여 박물관에서 만난 금동대향로, 수중세계에서 천상까지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향로에 담아낸 백제인의 예술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용의 형상을 한 향로 받침과 신선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봉래산의 신비함을 담은 몸체, 나라가 가장 태평할 때 나타난다는 영험한 봉황.향로에 향을 피우면 피어오른 연기가 봉래산을 자욱하게 덮어 그 아름답고 신비함이 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산에서 만난 마애 삼존불은 또 어떠한가...
빛의 움직임에 따라 어린 아이의 미소에서 관록이 묻어난 노년의 관조적인 모습까지 모두 볼수 있도록 조성이 되었다 자연석이 만들어준 지붕이 비바람속에서도 현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백제 시대 장인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3박 4일 간의 백제로의 여정
공주와 부여를 거쳐 서산까지 웅진ㆍ사비기의 2백여 년 세월을 타임머신을 타고 3일 만에 여행을 하였다. 타임머신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던 백제로의 여정은 밝은 빛 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내 마음 속 가득했던 어두운 백제의 모습이 이번 탐방을 통해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차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들은 백제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