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오릉 홈페이지 참조-
서오릉이 새단장하면서 생겨난 조선왕릉 역사문화관
서오릉의 소개와 왕릉 조성 영상등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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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은 홈페이지에 예약하면 개방된 능침을 관람할수 있다고 한다
제13대 명종 원자 순회세자 · 공회빈 순창원(順昌園)
- 위치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원의 형식 :합장
- 원의 조성 :1563년(명종 18), 1870년(고종 7)
원의 구성
순창원은 조선 13대 명종의 원자인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합장 원이다. 원소는 추존 덕종의 경릉(敬陵)의 예를 따라 간소하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이 배치되어 있고, 비각과 표석은 설치하지 않았다. 원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봉분만 조성하였으며,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원의 역사
1563년(명종 18)에 순회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양 경릉(敬陵) 근처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공회빈 윤씨가 1592년(선조 25)에 세상을 떠나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파천이 결정되면서 장례를 치루지 못하였다. 선조는 임시로 후원에 가매장의 명을 내리고 한양수복 후 공회빈의 시신을 찾으려 하였으나 끝끝내 찾지 못하였다. 왜란이 종결 된 후 겨우 신주를 만들어 봉안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원호를 순창원(順昌園)이라 하였다.
순회세자(順懷世子) 이야기
순회세자(재세 : 1551년 음력 5월 28일 ~ 1563년 음력 9월 20일)는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원자로 1551년(명종 6)에 태어났다. 아명은 곤령?齡이고 휘는 부?이다. 1557년(명종 12)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561년(명종 16)에 가례를 올렸으나, 2년 뒤인 1563년(명종 18)에 13세로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恭懷嬪) 이야기
공회빈 윤씨(재세 : 1552년(?) ~ 1592년 음력 3월 3일)는 본관이 무송인 윤옥과 파평윤씨의 딸로 생년은 미상이나, 『선조수정실록』에 10세에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552년(명종 7)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561년(명종 16)에 순회세자의 빈으로 황대임의 딸이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간택을 중단하고, 대신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563년(명종 18)에 순회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덕빈(德嬪)의 칭호를 받았다. 이 후 1592년(선조 25)에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20대 경종 사친 옥산부대빈 장씨 대빈묘(大嬪墓)
- 위치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묘의 형식 :단분
- 묘의 조성 :1702년(숙종 28), 1719년(숙종 45), 1969년
묘의 구성
대빈묘는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사친인 옥산부대빈(희빈) 장씨의 묘이다. 대빈묘는 후궁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다. 문석인,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혼유석, 묘표석을 배치하였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곡장을 둘렀다. 묘표석에는 ‘有明朝鮮國玉山府大嬪張氏之墓(유명조선국 옥산부대빈장씨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묘의 역사
1701년(숙종 27)에 희빈 장씨가 세상을 떠나(자진(自盡)), 이듬해인 1702년(숙종 28)에 양주 인장리(현 구리시 인창동)에 묘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묘소 자리가 불길하다 하여 1719년(숙종 45)에 광주 진해촌(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으로 이장하였다. 이후 1969년에 묘소를 서오릉 경내로 이장하였다.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 이야기
옥산부대빈 장씨(재세 : 1659년 ~ 1701년 음력 10월)는 본관이 인동인 옥산부원군 장형과 파산부부인 윤씨의 딸로 1659년(효종 10)에 태어났다. 숙종대의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 조씨를 모시는 궁녀로 입궁하여, 숙종의 총애를 받아 1686년(숙종 12)에 숙원(淑媛, 내명부 종4품 후궁)이 되었다. 소의(昭儀)의 품계에서 1688년(숙종 14)에 숙종의 첫 아들 윤(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숙종은 희빈이 낳은 왕자를 원자(元子)로 책봉한다는 뜻을 밝히자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은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이 일로 인해 기사환국이 발생되어 남인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숙종은 환국 이후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의 자리에 폐위하고 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에 인현왕후 복위 운동과 숙빈 최씨 독살사건이 발단이 되면서 갑술환국이 발생되어 서인 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고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그 후 희빈은 1701년(숙종 27)에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현왕후를 무고한 혐의(무고의 옥)가 밝혀져 자진하였다.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1722년(경종 2)에 왕의 사친으로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고, 사당의 이름은 대빈궁, 묘소의 이름을 대빈묘라 하였다.
- 서오릉 홈페이지 참조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48&mn=RT_01_10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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